콘텐츠의 ‘시작’과 ‘끝’은
사람의 몫입니다
콘텐츠의 ‘시작’과 ‘끝’만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면 콘텐츠를 기획하고 전체적인 공정을 마무리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렵죠. 인공지능은 그 과정에서 인간을 도와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고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콘텐츠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 즉 기획과 최종적인 배치를 결정하는 일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노창희/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아이디어의 ‘발화점’은
사람이 쥐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아이디어의 ‘발화점’, 설계의 큰 틀은 사람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장르든 AI를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본인에게 있어야 하고 해결하고 싶은 질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주로 글을 쓰고 판단하고 다듬는 일을 하다 보니, 정작 필요한 것도 문장력보다 각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직조하고 나열하는지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능이라면 출연자를 섭외하는 일, 그리고 이들이 어떤 그림이 될지 예상하는 일만큼은 일종의 스키마가 형성된 사람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치나 학습된 데이터로는 판단할 수 없는 정서적 교감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교석/TV 칼럼니스트
포옹을 빼고,
“아빠, 밥 먹었어?”를 넣겠습니다
AI에게 “아버지와 딸이 오랜만에 재회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아마 포옹하고 눈물 흘리는 장면을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만든다면 오히려 포옹 장면을 빼겠습니다. 대신 딸이 아버지를 보자마자 “아빠, 밥 먹었어?” 하고 묻는 장면을 넣을 것 같아요. 실제 가족 사이에서는 보고 싶었다는 말을 직접 하기보다, 그런 평범한 말에 마음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AI가 이런 장면을 못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왜 이 장면을 선택했는가”라는, 자기 경험에서 출발한 선택만큼은 만든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광민/직장인
상처받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어요
저는 AI의 압도적인 속도를 체감하면서도, 마지막 온기는 결국 사람의 몫이라고 믿는 쪽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본 사람만이 사람의 상처를 보듬는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AI가 슬픔의 패턴을 매끄럽게 묘사할 순 있어도, 이별한 뒤 마시다 만 생수통 하나에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기이한 감정의 굴곡까지는 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상처받아 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성급히 단정 짓지 않고, 결함투성이 인물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품어줄 수 있잖아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이니까요. 김유진/직장인
웹툰의 영혼은 ‘치열한 삽질’에 있습니다
‘아니,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하며 독자 뒤통수를 얼얼하게 때리는 웹툰 속 그 기막힌 연출이나, 주인공이 오해를 풀고 엉엉 울 때 나도 모르게 휴지를 찾게 만드는 감정선은 AI가 그린 깔끔한 펜선만으로는 절대 안 나와요. 결국 밤새 머리를 쥐어짜며 ‘이 장면에서 독자들이 과연 카타르시스를 느낄까?’ 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작가만의 뚝심과 시행착오가 담겨야 진짜 명작이 탄생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독자로서든 제작자로서든, 웹툰의 영혼을 쥐고 있는 그 ‘치열한 삽질과 인간미’만큼은 끝까지 사람의 손길을 믿고 싶어요. 장상욱/고교 미술교사
일부러 완벽하지 않은 순간을 남기고 싶어요
음악 콘텐츠를 만든다면 노래의 마지막 감정 표현과 보컬 디렉팅만큼은 사람의 판단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AI는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만들고 음정까지 정확하게 다듬을 수 있지만, 어떤 가사는 조금 흔들리는 목소리로 불러야 더 진심처럼 들리고, 어떤 부분은 완벽한 고음보다 숨을 섞어 작게 부르는 편이 더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선택은 정확도보다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와 가수의 경험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최종 녹음에서는 가수의 호흡을 살리고, 일부러 완벽하지 않은 순간도 남기고 싶습니다. 듣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 매끈함보다 한 사람의 진짜 감정일 수 있으니까요. 최재부/독자
캐릭터의 모순과 망설임까지 설계하려면
게임을 만든다면 캐릭터의 성격과 선택에 따른 감정 변화를 설계하는 부분은 사람이 꼭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는 수많은 설정과 대사를 빠르게 제안할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고 미워하다가 결국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논리적인 이야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봐요. 사람은 실제로 관계에서 실망하고 후회하고 용서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모순이나 망설임까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경 아이디어나 반복 작업에는 AI를 적극 활용하더라도, 엔딩에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감정을 남길지는 끝까지 사람이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류시현/독자
“아까 그 장면, 나가도 괜찮겠어요?”
저는 예능에서 어디까지 웃음거리로 삼을지 정하는 일은 사람이 했으면 좋겠어요. 출연자가 말실수를 했을 때 자막을 붙이고 몇 번 반복하면 웃긴 장면이 되겠지만, 가끔은 보는 제가 다 민망해서 그만 보여줬으면 싶을 때가 있거든요. 본인도 웃고는 있는데 정말 괜찮아서 웃는 건지,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웃는 건지는 화면만 봐서는 알기 어렵잖아요. 촬영이 끝난 뒤 “아까 그 장면 나가도 괜찮겠어요?” 하고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도 웃고, 나온 사람도 나중에 편하게 다시 볼 수 있는 예능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준호/웹개발자
AI와 AI 사이에 낀 햄버거 패티가 된 기분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대본을 쓰는 사람입니다. 제 보조작가로 AI를 쓰면서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가끔 현실 자각이 오는 순간은, 관리자급이 작품 전문을 AI에 돌려 조금도 고치지 않은 채 피드백을 줄 때입니다. 마치 제 AI와 상대 AI 사이에 낀 햄버거 패티가 돼버린 기분이랄까요. 어느새 사람이 직접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AI에 의존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나의 콘텐츠가 누군가의 피드백으로 발전하려면, 평균치에 가까운 AI의 도움은 받되 인간 개인의 뾰족한 생각만큼은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이태연/드라마 작가
답변 중 유독 자주 등장한 말은 ‘마지막’과 ‘최종’이었다.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가 마지막 장면과 대사, 최종 판단과
선택을 말했다. 그렇다고 AI를 거부하겠다는 답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초안과 자료 정리, 반복 작업에는 AI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사람의 자리는 그 뒤에
있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고르는 일, 이 장면을
정말 내보내도 되는지 되묻는 일, 현장에서 예상과 다르게
터져 나온 순간을 잘라낼지 살릴지 판단하는 일들 말이다.
독자들이 말한 ‘사람의 손길’은 대부분 노동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직접 타이핑하고 직접 그리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무엇을 버릴지 고르고 그 선택에 자기
경험과 책임을 담는 일. 기술이 빨라질수록 사람이 켜지는
자리는, 결국 결정의 자리였다. 41호가 ‘Humanity : On’이라는
이름으로 묻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