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한국 예능이 찾아온 건 결국 ‘좋은 사람’이었다
© 유튜브 채널 ‘올끌 (All of MBClassic)’
<무한도전> 영상 갈무리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이 한마디 노래 가사는
지난 20여 년간 우리 예능이 추구해 온 길이다. 2000년대
중후반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문을 연 이후
한국 예능은 지금까지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내세우는
뚜렷하고 일관된 경향을 보이며 진화했다.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그 순도를 높여온 도전 과정이 지난 20년간
한국 예능이 걸어온 장르적 확장과 개념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예능은 ‘코미디’에서 ‘음악 서바이벌’,
‘쇼 버라이어티’에서 ‘관찰 예능’, 대규모 출연자가 나오는
‘오디션 쇼’에서 ‘1인 방송’까지 광범위한 콘텐츠를 아우를
정도로 확장했지만, 재미의 원천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뇌·심리 서바이벌 쇼나 연애 예능이 결국 출연자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이유, 유독 여행과 밥을 먹는 콘텐츠가
많은 이유, 나영석 사단의 예능이 반복되는 코드에도 매번
흥행하는 이유는 ‘좋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짧고 강한 영상이 시선을 끄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누군가의
여행과 대화를 오래 지켜보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예능이 ‘사람’에 주목하게 된 건 재미의 요소가 휘발성
자극에서 정서적 교감으로 점차 변화하면서부터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스튜디오 밖으로 수십 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면서 기존의 쇼 버라이어티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캐릭터 쇼가 등장했다.
출연자들은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왔고, 그들이 뭉쳐서
벌이는 일은 실시간 드라마 같았다. 대중들은 출연진들의
패밀리십이 방송이라는 직장이 아닌 실제 삶에 카메라를
비춘 리얼이길 바랐다. 저 우정이 실제로도 저런지, 저
티격태격이 연출인지 아닌지가 관건이었다. 나아가 TV 속이
아니라 우리네 이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길 바랐다.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마시는 공기와 딛고 선 땅이 우리와 같다는
데 호감을 느끼고 교감했다. 이러한 관계의 감각은 관찰
예능의 시대가 이토록 오래 이어져 온 이유이기도 하다.
©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나혼자산다> 영상
갈무리
스트리밍이 TV를 집어삼킨 2026년 현재, 출연자는 단순히 기획된 프로그램 속의 캐릭터 하나가 아니다. 살아온 삶과 지금까지 쌓은 이력이 기획의 모체가 되고, 그 삶에서 잘라낸 한 토막이 그대로 콘텐츠가 된다. 기안84, 김연경, 최수종처럼 개인의 브랜드가 콘텐츠가 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제작진의 포트폴리오 또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그만큼 사람에게 거는 기대와 끌어당기는 힘이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익숙한 얼굴이 새로워졌다
© 유튜브 채널 ‘뜬뜬’ <풍향고> 영상 갈무리
대표적인 예가 유재석이 진행하는 웹예능 <핑계고>다.
유재석 콘텐츠의 핵심은 좋은 사람을 발견하고 인간적
매력을 소개하는 데 있다. 유재석과 제작진이 함께 만드는
이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독 친근하게 다가온다.
대부분 이미 익숙한 유명 연예인인데도 그렇다.
<핑계고>의 여행 콘텐츠 <풍향고>는 큰 틀에서
익숙한 여행 예능 콘텐츠다. 지석진, 양세찬은 유재석과
오래도록 함께해 온 멤버이고, 시즌 1의 황정민과 시즌 2의
이성민 정도를 제외하면 익숙한 관계가 중심이다. 여행
예능이지만 실제 본인 돈으로 회비를 걷고, 스마트폰 앱을
쓰지 않는 제약이 유일한 설정이다. 그 불편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아저씨 기질과 생활력이 볼거리가 되고, 벌
만큼 버는 사람들이 환전 몇 푼에 옥신각신하는 장면에서
그토록 오래 봐왔던 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시리즈를 거듭하며 화제를 모았고 백상예술대상 예능
작품상까지 받았다. 국내 여행 스핀오프 <풍향중>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핵심은 제작진의 시선 처리다. 예능 선수와 배우들이 무대
위의 존재가 아니라 수수한 차림의 생활인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시청자는 고생기를 낄낄거리며 보는 게 아니라
좌충우돌 속에서 잊고 살았던 주변의 소중함을 함께
발견한다.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공감과 청유의
예능이다. 그러면서 이 콘텐츠에 단골 등장하는 이동욱과
이성민, 지석진, 양세찬 등이 실제로 아는 사람처럼 훨씬 더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른바 이른바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 즉, 미디어 속 인물은 나를
알지 못하지만, 시청자인 우리는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느끼는 일방적인 친밀감이 형성된다. 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가 리얼리티를 극단으로 추구하는 오늘날
예능에서 찾는 좋은 사람의 자격이자 목표다.
© 유튜브 채널 ‘KBS Entertain’ <최수종의 여행사담>
영상 갈무리
예컨대 <최수종의 여행사담>엔 별다른 장치나 새로운
볼거리는 없다. 국내를 다니고 풍경을 보고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럼에도 시즌 3까지 나올 만큼 찾는 사람이 생기는
건 최수종이라는 사람 자체가 이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이어온 잉꼬부부의 모습, 후배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좋은 선배라는 평판이 이미 스토리다. 우리가 정작
보는 건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부부의
기분 좋은 에너지다.
물론, 모두에게 최수종처럼 대중과 함께 쌓은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늘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볼 좋은 사람을
새롭게 소개하는 것이 예능의 기획이자 재미의 설계다. 어느
순간 개그맨 출신 예능 선수들이 사라지더니 배우들이 그
자리에 들어왔고, 지금은 일반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일반인
출연자에겐 대중에게 익숙한 캐릭터가 없는 대신 실제 삶이
있다. 연출로 빚어낼 필요 없이 그 삶의 맥락이 그대로
이야기의 재료가 되기에 리얼리티의 순도는 최상이다.
그러자 연예인들이 스스로를 새롭게 브랜딩한다. 신비주의
대신 친밀감이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방송보다 사적인
영역을 열어 보이며 점점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이돌
산업에서도 필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좋은 사람은 설계되는 게 아니라 발견된다
그런데 사람 자체가 콘텐츠의 본질이자 기획의 씨앗이 되다
보니,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예 좋은 사람을
보여주는 걸 기획 의도로 삼는 경우다. 관계성이 그 어느
때보다 예능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된 건 맞지만, 그
관계를 기획으로 빚어내려 할 때 프로그램은 심심해진다.
좋은 사람은 시청자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지 세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해함을 키워드로 삼고 준비한 예능들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떠올려 보자.
나영석 사단의 새로운 IP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는 한국 명산이라는 K-풍경, 하이킹 트렌드, 젊은
얼굴들로 꾸린 조합까지 새로운 면이 많은 기획이었다. 다만
이를 푸는 방식은 형님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유사가족을 이루는, 이미 여러 차례
익숙하게 보아온 리얼 버라이어티식 캐릭터쇼의 문법에
가깝다. 이처럼 관계와 패밀리십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은
출연자의 매력이 자연스럽게 발견되기보다 기획 의도가 먼저
보일 때 오히려 리얼리티의 힘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반대로 신뢰가 깨질 때는 훨씬 거센 반응이 돌아온다. 최근
<나 혼자 산다> 전현무의 즉흥 여행을 두고 제작진이
사전 발권과 현지 촬영 협조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한 뒤에도
반응이 가라앉지 않은 것도 내 곁에 늘 있는 좋은 이웃처럼
느꼈던 몰입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의심이 생기는 순간 남는 건 실망을 넘어 박탈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나락을 보내고 싶은 검은 욕구보다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느끼는 배신감에 가깝다.
결국 예능이 남기는 건 웃음이 아니라 관계다
짧고 빠른 콘텐츠가 시장을 점령하는 동안에도, 진정성을
좇아온 예능은 사람을 찾고 소개하는 데 천착했다. 캐스팅
자체가 기획이자 설계가 되는 프로그램들이 점점 늘고 있다.
웹예능을 벤치마킹한 작은 기획이 늘어나고 스핀오프가
활발해진 것도 사람의 발견에 초점을 맞추기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도, 내년에도 예능의 성패는 이 소개의
힘과 발견의 재미에 달려 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콘텐츠를 보는 시간은 줄어들고,
각자 자기만의 디바이스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무해하면서 내게 도움과 위로가 되는
좋은 사람을 알게 되고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 곧
개인화된 위로와 위안이다. 그래서 예능은 더 이상 웃음을
추구하는 오락거리가 아니다. 재미의 본질은 매체를 통해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성이다. 바로 이 점이 1956년 도널드
호턴(Donald Horton)과 리처드 월(R. Richard Wohl)이
제시한 ‘파라소셜 관계’라는 개념이 요즘 들어 다시 자주
호명되는 이유다. 확대해석하자면 이웃과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 줄어든 자리를 예능 속 인물이 대신 채우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숏폼의 시대가 도래하고 도파민의 파도가 예능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예측과 우려가 반복되는 가운데, 예능에서 사람의
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화면 너머의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길 바라는 마음은 현실의 결핍을 채워주는 일상의
위안이자 정서적 안온함이라는 효용으로 작동한다. 짧고 센
자극은 그 순간의 허기를 달래줄 뿐 곁에 둘 사람을 남기지
못한다. 기술이 콘텐츠를 만드는 속도를 아무리 끌어올려도,
시청자가 끝내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화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감각이다. 짧게 소비되는 시대에 사람 이야기가 오래
시청되는 이유도 결국 그 인간다움에 있다. 그리고 이 좋은
사람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의 투영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극의 홍수 속에서
결국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머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교석
TV 칼럼니스트. 영화잡지 기자로 시작해 20여 년간 예능과 방송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써왔다.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을 7년간 지냈고, 현재 조선일보 <남자의 물건>, 엔터미디어 <어쩌다 네가> 등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아무튼, 계속》, 《오늘도 계속 삽니다》가 있고 공저로 《K-컬처 트렌드 2026》 등이 있다.